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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아코-거룩한 동굴(Sacro Speco)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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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11-10 19:54 조회 30,670 댓글 0
 

로마연합교회 / 기독교역사현장


수비아코 거룩한 동굴(Sacro Speco) 베네딕트 수도원
Monasteri Benedettini di Subiaco


1. 베네딕트의 생애와 사상

1) 영적인 삶을 택함
benedict.JPG베네딕트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동로마제국이 세워지는 시기의 혼란한 시기 480년 누르시아의 어느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벌써 노인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만 전해지고 있다. 청년기에 베네딕트는 당시의 관습을 따라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보내어졌다. 학문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고 로마에 갔으나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악습의 심연에 빠져있었고, 도덕적 퇴폐는 베네딕트에게 환멸을 주었다. 그는 단연히 도덕적 타락과 술수와 음모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의 학문을 포기하고, 그는 대신 영적인 인간으로 머물러 있기를 결심한다. 베네딕트는 술수와 음모로 출세하기보다는 영적인 인간을 택했다.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그는 의식적으로 무식한 채 물러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식하지 않았다. 그는 소위 유식한 무식을 처음으로 표방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위대한 무식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오직 구령(救靈)에 도움을 주는 지식에만 관심을 가졌다.


2) 아필레(Afile)에서의 체의 기적
세상학문을 포기한 베네딕트는 아필레로 유모와 함께 이사하였다. 이 아필레에서 한가지 일화가 있다. 하루는 유모가 이웃집에서 점토로 만든 체를 빌려 왔다. 그런데 사용하다가 탁자에서 떨어뜨려 두 동강이로 깨지고 말았다. 유모는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며 몹시 울었다. 유모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은 베네딕트는 깨어진 채를 집어 들고 기도하러 교회로 갔다. 잠시 후, 베네딕트는 온전한 체를 들고 돌아왔다. 이 일은 동네에 놀라운 사건으로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그 체를 갖다가 교회 문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한 기적을 갖고 떠들썩하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해 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날 자기 유모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몰래 그 동네를 떠나 깊은 산골 수비아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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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 3년간의 동굴 기도생활

베네딕트는 세상을 등지고 고독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로마에서 50Km 떨어진 깊은 산골 수비아꼬(Subiaco)로 갔다. 수비아꼬에서 그는 로마누스란 개인 수도자를 만나게 된다. 로마누스는 베네딕트에게 수도복을 한벌 주고 가파른 절벽에 있는 비좁은 동굴을 가르쳐 주었다. 베네딕트는 이 세상의 칭송보다는 오히려 고난 속에서 홀로 있기를 바랐다. 로마누스란 수도자는 동굴에서 가까운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몫의 빵을 남겨서 바구니에 넣어 때때로 동굴위에 있는 바위로 가서 바구니에 밧줄을 매달아 베네딕트한테 내려 보냈다. 베네딕트는 동굴에서의 기도생활 기간에 그 빵 외에 다른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했다. 동방에서는 이미 이런 형태의 은수생활이 있었지만 서방에서는 아직 거의 없었다. 그 당시 기독교는 지하 카타콤에서 올라와 대중 속으로 왕성하게 퍼지고 있었다. 복음의 대중화와 더불어 세속화 또한 함께 따르게 되었고, 그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 정신보다는 통속화와 천박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콘스탄티누스 이후에 황제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출세의 보장을 위해 황제의 줄에 서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기도 하였다. 최초의 수도자들은 이런 왜곡된 신앙에서부터 진실된 신앙으로 회복하길 원했다. 초기 은수자들은 영에 취한 사람들이었다. 베네딕트도 그러했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동굴생활은 참혹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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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동들의 교회

한번은 목동 몇 사람이 동굴에 있는 그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처음에는 어떤 짐승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인 것을 알고는 호기심으로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처음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만을 살겠다며 그들의 만남과 요청을 거절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목동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활방식과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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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귀의 유혹과의 치열한 싸움
동굴 속에서 홀로 외롭게 3년을 지낸 베네딕트는 많은 극심한 유혹을 이겨내야 했다. 한번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주위를 돌면서 지저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새소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새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럽게 기도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새의 우짖는 소리를 듣다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한 여인이 머리에 떠 올랐다. 그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속에 그리자 불현 듯이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올라왔다. 이 새의 소리는 단순한 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기도를 방해하고 수도생활을 중단시키려는 마귀의 유혹의 서곡이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도 유혹을 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생활의 필수적 요소이다. 베네딕트는 그 아름답고 기품있는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젊음의 욕정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래서 그는 그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기도를 중단하고 산속을 내려갈까 생각을 했다. 베네딕트는 동요하며 갈팡질팡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동굴을 벗어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위험한 순간에 베네딕트는 가까운 곳에 무성한 쐐기풀과 선인장 그리고 장미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숲이 눈에 띄었다. 순간 번쩍하는 깨달음 속에 우짖는 새는 바로 자기의 기도줄기를 방해하고자 했던 마귀의 서곡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그는 주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옷을 벗어버리고 가시에 마구 찔리면서 알몸을 던져 뒹굴며 이 유혹을 물리치고 이기게 해 달라고 처절히 울부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온 몸이 쇄기와 가시에 할퀴고 찢기우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했다. 이윽고 욕정은 사라지고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이후 그는 그런 시련을 다시 겪지 않았다. 그는 대담한 행동과 강인한 의지로 그 유혹을 결정적으로 물리쳤던 것이다. 여기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니 가시덤불 따위의 세부적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유혹에 저항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직 사람이 유혹에 맞서 싸운다는 것만이 의미가 깊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며 서슴없이 거친 방법으로 자신의 본성과 자주 치고 받는 접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만다. 사람이 싸우고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 싸움에 싫증이 난다면 이미 그 때는 자가 자신에 자신의 삶에 항복한 셈이다. 베네딕트도 편한 가마를 타고 느긋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피나는 한판 싸움을 벌이며 믿음의 길을 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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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굴을 벗어나 이웃을 향하여
베네딕트는 3년 동안 동굴에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동굴에 수도자 몇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의 원장이 죽었기 때문에 베네딕트에게 원장이 되어 달라고 청하러 온 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하여 간청하였다. 베네딕트는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의 신앙생활양식이 피차에 다르며, 자신의 신앙생활은 아주 엄격하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끝까지 간청을 하여 그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베네딕트는 이렇게 독수 수도자의 생활에서 공주 수도자의 생활로 옮겨갔다. 이것은 그의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은수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둘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실행하지 못했다. 그들은 혼자 살았고 이웃이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생각하며 베네딕트는 그 정든 동굴을 떠나 수도원으로 옮겨가서 이후 형제적 공동체를 육성하려고 했다. 구원과 하나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자기 혼자만의 구원의 기쁨에 있을 수 없다. 그는 마지막 한 영혼까지 사랑하며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7) 전심으로 기도할 것
베네딕도는 매우 진지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한번은 한 수도자가 하챦은 일에 매달려 골몰하여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마귀가 장난하고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의 들뜬 소행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회초리로 등을 때려주었다. 베네딕트는 때로는 엄격하게 매를 통하여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단번에 해방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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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들
베네딕트는 어느 정도 엄격한 성품이었지만 결코 냉혹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언행이 일치하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에게 수도원 규칙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이렇게 엄격한 수도생활을 요구하리라고는 예기치 못했다. 그들은 타성에 젖은 느슨한 생활을 원했으나 베네딕트는 수도자들에게 자신의 주관적 고집을 억제하고 수도자들의 일반적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얼마 안가서 드디어 심한 긴장과 대립이 빚어졌고 이 긴장은 폭발하여 결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타협할 인물이 아니었다. 수도자들은 베네딕트를 수도원에 끌어들인 것을 몹시 후회하였고, 어떻게 하면 다시 베네딕트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의를 했다. 드디어 수도자들은 폭력을 써서라도 그를 제거하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들은 식탁에 올라오는 포도주 잔에 독약을 탔다. 평상시와 같이 식탁에 앉았고 기도를 하자 그 순간 베네딕트의 잔은 산산이 부서졌다. 베네딕트는 즉시 그들의 악마적인 흉계를 파악하였다. 좌석은 경악하여 술렁거렸다. 수도자들은 자기들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았다. 그는 일어나 말했다.
“형제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바랍니다. 왜 여러분은 나에게 엉뚱한 짓을 하려 했습니까? 나의 생활습관과 여러분의 생활습관이 결코 함께 어우러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원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초청해 놓고서, 하나님 앞에 헌신했다는 사람들이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독살하려 합니까?” 베네딕트는 환멸을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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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베네딕트의 생애에서 두 번째 맞는 환멸이었다. 첫 번째는 로마에서 학업을 포기하였을 때였다. 흉계가 탄로 난 수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도 용서를 청하지 않았고, 떠나는 그를 붙잡지도 않았다. 베네딕트는 비애에 찬 심정으로 자기 동굴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은둔 기도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이 음흉한 살인음모는 당시의 풍조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도원이 아무리 두꺼운 담에 둘러싸여 있어도 시대풍조는 담을 뚫고 스며들어왔다.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사람의 생명은 거룩한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과 평생 기도하며 산다는 사람들이 먼저 사탄의 공격에 맥을 못 추었다. 수도생활은 하나의 획기적인 영성운동이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말대로 많은 수도자들은 “삭발을 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들”이었다. 이 무서운 말은 현재에도 우리의 귀를 때리고 있다. 현대의 교회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는 구호 속에 오히려 하나님을 속이고 있지는 않는가?

9) 자발적으로 세워진 열두개의 기도원
그는 동굴에서 다시 기도생활을 시작하였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 온전한 사명자의 길은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숨어 사는데도 불구하고 베네딕트의 은둔기도생활은 사람들에게 점점 널리 알려졌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의 은둔생활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자기들도 같은 생활을 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사람들이 그 주변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정주하였다. 베네딕트는 그들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익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해서 비록 아주 작은 규모이기는 했지만 새로운 수도원이 형성되었다. 이 두 번째 수도원은 서서히 성장해 갔으며, 마침내 주변에 열두 개의 작은 수도원이 생겨났다. 베네딕트는 자발적으로 모여든 이들을 지도하면서 12명의 단위로 된 12개의 소공동체 수도원을 만들고, 베네딕트 자신은 중심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으면서 11개의 수도원을 지도하였다.
이렇게 수도원의 기틀이 잡히자 그는 드디어 은둔기도생활을 결별하였다. 이제 그는 새로운 수도원공동체를 지도하는 입장이 되었다. 첫 번째처럼 거칠고 황당한 수도원을 쇄신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습성화된 마음의 태만은 쇄신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수도원을 창설했으니, 이 수도원은 처음부터 그의 힘으로 육성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흔히 예기치 않았던 난관에 부닥치곤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 차차 소문이 퍼져 그 명망이 높아져 나갔다. 그는 환난가운데 인내하며 기도하였고, 그 인내는 온전한 사명자로서의 연단이었으며, 그 연단은 오직 그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였다.

10) 샘물
수도원 산 주위에는 물이 없었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먼데서 물을 길어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베네딕트는 그 고생을 보고 산 위에 올라가 기도했다. 그 뒤에 자기가 세 개의 돌을 놓아둔 자리에 가서 물이 나올 때까지 파라고 했다. 과연 얼마 안파서 샘물이 솟아 나왔다.

11) 호수에 빠진 소년
한 부모가 두 소년을 맡기었다. 그들의 이름은 마오로와 쁠라치도였다. 하루는 쁠라치도가 물을 길으러 호수에 갔다가 빠졌다. 기도하는 중 물에 빠진 환상을 본 베네딕도는 마오로에게 빨리 달려가 플라치도를 구하라고 하였다. 마오로는 달려가 물에 빠진 쁠라치도를 구해냈다. 그런데 호수에 나와 보니 마오로는 물에 빠지지도 않고 물위로 달려가 쁠라치도를 구해내었던 것이다. 달려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고 보니 자신이 빠지지 않고 물 위로 걸어갔다왔던 것이다. 쁠라치도는 자신을 끌고 나오는 사람을 스승 베네딕트로 보았다. 마오로는 놀라서 스승님의 영력이 이러한 기적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마오로의 순종이 이러한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하였다. 기적을 제자의 순종의 탓으로 돌리는 겸손이 그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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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낫이 떠오름
한 수도자가 일을 하다가 낫을 물속에 빠뜨렸다. 수도자는 상심이 되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상심하지 말고 일을 계속할 것을 권면 했다. 그리고 기도하자 물속에 빠졌던 낫이 다시 수면에 떠올랐다. 이런 기적들은 성서의 기적들과 비슷하다. 이러한 일들은 그레고리오의 말대로 영적충만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표징이었다. 성서에 나타난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필요로 할 때 베푸시는 은총의 표시였다. 그 기적은 과거 문서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하나님 은총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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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끝없는 시기와 새로운 도전
베네딕트에 대한 소문이 점점 널리 퍼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 근처에 있던 다른 성직자인 프로렌시오라는 사람이 그를 시기 질투하기 시작하였다. 그 시기는 한도를 넘어 베네딕트를 독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빵에다 독약을 타고 베네딕트에게 부활절 빵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이를 알아차리고 그가 먹이를 주며 친구가 된 까마귀에게 마귀의 시험이 있는 이 빵을 멀리 갔다 버리라고 명하였다. 이런 일이 빈번하자 베네딕트는 는 이러한 간계에 대항하여 싸우기 보다는 떠나기로 결심하고 의연히 정든 수비아꼬 수도원을 떠난다. 아브라함이 조카 룻에게 원하는 것을 먼저 주고 자신 그 후에 갈 길을 택했듯이 갈등있는 곳에서 양보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는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수비아꼬를 떠나는 날 아침에 자기 집의 발코니 앞에서 떠나는 베네딕트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던 프로렌시오는 발코니가 무너져 깔려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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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몬테까시노
그는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현재의 몬테까시노 지역에(나폴리 가기 전) 당도한다. 베네딕트 일행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전망이 좋은 자리에 기도원을 세우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오래된 아폴로신전이 있었다. 베네딕트는 그 이교신전을 부수고 신전을 수도원으로 개조하여 새로이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직접 설계를 하고 돌을 나르며 기도의 집을 지었다.

15) 꼼짝 않는 바위-영적 건축자
몬테까시노 수도원을 짓는데 실감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몇몇 사람들이 커다란 돌을 땅에서 들어 올리려 했으나 이상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베네딕트에게 말하자 베네딕트는 마귀의 장난임을 알고 기도를 하자 마귀는 도망가고 바위는 아주 가볍게 들리어져 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전을 봉헌하고 이 수도원의 이름을 "몬테까시노"라 이름지었다. 그는 웅대한 규모의 기본설계를 했고,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튼튼한 토대를 쌓았다. 그는 집을 견고하게 지으면서 몇번이고 검토해 나갔다. 그는 실제 위대한 건축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몰락하는 시대의 걸출한 영적 건축자였다.
베데딕트는 세상과 격리된 채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였지만, 당시의 중요 인물들의 방문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또 장래 일을 예견하였다. 한편 그는 신분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특별히 야만인들의 침략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 기근으로 인해 굶주리는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는 이곳에서 그동안 수도생활 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수도원 규칙서 73개조항을 세웠다. 세계의 모든 수도원들이 이 규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5) 서양정신사의 전환점
몬테까시노는 서양정신사의 한 전환점이고 상징이었다. 베네딕트는 기도와 노동과 찬미, 그리고 침묵을 강조했다. 고대에 있어서 노동은 노예나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베네딕트에 와서 비로서 노동, 일을 중시하는 사상을 펴게 된다. "Ora et Lavora 기도하고 일하라" 이것이 베네득트 수도원의 모토이고, 전세계 수도원의 모토이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하여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 찬미는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가장 깊은 존재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 찬미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권력도 명예도 사라지지만 하나님 찬미는 영원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16) 기도, 노동, 찬미
베네딕트는 몰락하는 고대로마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기도와 노동과 찬미를 힘차게 실천하였다. 베네딕트는 시절에는 아직 성가의 원조인 그레 고리오성가는 없었다. 아마 베네딕트의 하나님 찬미의 음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레고리오 성가가 발전했을 것이다. 베네딕트의 하나님 찬미에는 감사기도와 간구의 기도가 다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사람을 그 아집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찬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이후 이 몬테까지노 수도원으로부터 전 유럽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복음이 세상으로 널리 확산되어 간다.

17)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
어떤 모습으로 죽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다. 베네딕트는 마지막 죽는 순간에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이 죽는 것을 미리 알았다. 그는 운명하기 전 사람들에게 자신을 부축해 일으켜 줄 것을 부탁한다.
"소망중에 바라보던 참다운 본향, 그 본향에서 우리 주님이 나를 영접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누워서 갈 수 있는가? 일어나서 경건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접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547년 3월 21일, 그는 이렇게 일어나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으로 손을 하늘로 쳐들고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베네딕트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기도하고, 일하고, 찬양하다 하나님 나라에 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18) 수도원 규약 73개조항
그리고 거기에서 수도원규약 73개 조항을 만든다. 그의 규약의 기본은 “기도하고 찬양하고 일하라”였다. 그동안은 노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인간이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거룩한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고, 노예들을 시켰다. 그러나 땀흘려 일하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것임을 주장했다.
매일의 육체노동에 대하여: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성서를 읽어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노동하여 생활을 영위할 때 비로서 참다운 수도자가 된다.
침묵에 대하여: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라는 예언자의 말씀을 지키자고 강조했다. 오히려 자기의 말이 많으면 타인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선 침묵을 해야 함을 강조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할 사람은 말하고 들어야 하는 사람은 침묵함으로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도와 찬미에 대하여: 우리의 일상 중에 가장 거룩한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하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하루에 일곱 번을 기도하고 찬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일곱은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피조물인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미해야 하는 것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가장 깊은 존재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권력도 명예도 사라지지만 하나님 찬미는 영원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찬송의 시초를 그레고리안 찬트에 두고 있는데, 바로 이 그레고리안 찬트는 베네딕트 수도원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렇게 기도와 노동과 찬미를 포함한 73개 조항으로부터 서방수도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몬테카지노 수도원으로부터 전 유럽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복음이 세상으로 널리 확산되어 간다.

베네딕트 십자가
베제덱트 수도원 십자가의 세로대와 가로대에는 각기 운율을 맞춘 다음과 같은 라틴어 기도문의 첫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CRUX SACRA SIT MIHI LUX! 거룩한 십자가여 저의 빛이 되소서!
NUNQUAM DRACO SIT MIHI DUX! 사탄의 길을 따르지 않게 하소서!
C S P B
CRUX SANCTI PATRIS BENEDICTI 우리의 거룩한 교부 베네딕트의 십자가
십자가의 위 평화 라틴어 PAX
둘레에는 라틴어 기도문:
V R S N S M V--S M Q L I V B
VADE RETRO, SATANA! NUNQUAM SUADE MIHI VANA! 사탄아 물러가라! 너의 교만으로 나를 유혹하지 말도록 할 것이다!
SUNT MALA QUAE LIBAS. IPSE VENENA BIBAS! 네가 내게 권하는 것은 악한 것이니 그 독잔을 너나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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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순교현장-… 초대교회 순교현장-…
2010년 사순절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순교의 현장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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