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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서방교회 수도원 베네딕트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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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0-01-07 20:12 조회 9,949 댓글 3
 

로마연합교회 / 기독교역사현장


최초의 서방수도원 창시자 베네딕도

영적인 삶을 택함
베네딕트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동로마제국이 세워지는 시기의 혼란한 시기 480년 누르시아의 어느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벌써 노인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만 전해지고 있다. 청년기에 베네딕도는 당시의 관습을 따라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보내어졌다. 학문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고 로마에 갔으나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악습의 심연에 빠졌있었고, 도덕적 퇴폐는 베네딕트에게 환멸을 주었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당시의 악습을 타락의 징조로 단정하였다. 그는 단연히 도덕적 타락과 술수와 음모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의 학문을 포기하고, 그는 대신 영적인 인간으로 머물러 있기를 결심한다. 베네딕트는 평범한 술수와 음모로 출세하는 지식인보다는 영적인 인간을 택했던 것이다.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그는 의식적으로 무식한 채 물러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식하지 않았다. 그는 소위 유식한 무식을 처음으로 표방한 사람중의 하나이다. 그는 위대한 무식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오직 구령(救靈)에 도움을 주는 지식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


아필레(Afile)에서의 체의 기적
세상학문을 포기한 베네딕도는 아필레로 유모와 함께 이사하였다. 이 아필레에서 한가지 일화가 있다. 하루는 유모가 이웃집에서 점토로 만든 체를 빌려 왔다. 그런데 사용하다가 탁자에서 떨어뜨려 두 동강이로 깨지고 말았다. 유모는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며 몹시 울었다. 유모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은 베네딕트는 깨어진 채 를 집어들고 기도하러 갔다. 잠시 후, 베네딕트는 온전한 체를 들고 돌아왔다. 이 일은 동네에 놀라운 사건으 로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그 체를 갖다가 교회 문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 한 기적을 갖고 떠들썩하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해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날 자기 유모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 몰래 그동네를 떠나 깊은 산골 수비아꼬로 향했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 3년간의 동굴기도생활
베네닥트는 세상을 등지고 고독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로마에서 50Km 떨어진 깊은 산골 수비아꼬 (Subiaco)로 갔다. 수비아꼬에서 그는 로마누스란 수도자를 만나게 된다. 로마누스는 베네딕트에게 수도복을 한벌 주고 가파른 절벽에 있는 비좁은 동굴을 가르쳐 주었다. 베네딕트는 이 세상의 칭송보다는 오히려 고난 속에서 홀로 있기를 바랐다. 로마누스란 수도자는 동굴에서 가까운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몫의 빵을 남겨서 바구니에 넣어 때때로 동굴위에 있는 바위로 가서 바구니에 밧줄을 매달아 베네딕도한테 내려보 냈다. 베네딕도는 동굴에서의 기도생활기간에 그 빵외에 다른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했다. 동방에서는 이미 이 런 형태의 은수생활이 있었지만 서방에서는 아직 거의 없었다. 그 당시 기독교는 지하에서 올라와 대중속으로 왕성하게 퍼지고 있었다. 복음의 대중화와 더불어 세속화 또한 함께 따르게 되었고, 그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 정신보다는 통속화와 천박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최초의 은수자들은 영에 취한 사람들이었다. 베네딕도의 동굴생활은 참혹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빛나고 있었다. 한번은 목동 몇사람이 동굴에 있는 그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처음에는 어떤 짐승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인 것을 알고는 호기심으로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그래서 베네딕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활방식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며
동굴 속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베네딕도는 극심한 유혹을 이겨내야 했다. 한번은 지빠귀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것은 기도를 방해하려는 마귀의 공격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바 로 그 새의 우짖는 소리를 듣다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한 여인이 머리에 떠 올랐다. 그 여인의 아름다운 자 태를 마음속에 그리자 불현 듯이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올라왔다. 어떤 사람도 유혹을 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생활의 필수적 요소이다. 베네딕도는 그 기품있는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욕정 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래서 그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쫓아가 기도를 중단하고 자기 이상을 저버릴까 하는 생 각을 했다. 베네딕도는 동요하며 갈팡질팡했다. 이 위험한 순간에 베네딕도는 가까운 곳에 무성한 쐐기풀과 선 인장 그리고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숲이 눈에 띄자 옷을 벗어버리고 가시에 마구 찔리면서 알몸을 던져 기 도하였다. 이윽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온 몸이 쇄기와 가시에 할퀴고 찢기우며 그리스도의 고난 을 생각했다. 이윽고 욕정이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왔다. 이후 그는 그런 시련을 다시 겪지 않았다. 그는 대담 한 행동과 강인한 의지로 그 유혹을 결정적으로 물리쳤던 것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니 가시덤불 따위의 세부적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유혹에 저항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직 사람이 유혹에 맞서 싸운다는 것만이 의미가 깊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며 서슴없이 거친 방법으로 자신의 본성과 자주 치고 받는 접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자 기자신과 싸우지 않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만다. 사람이 싸우고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 싸움에 싫증이 난 다면 이미 그 때는 항복한 셈이다. 베네딕도도 편한 가마를 타고 느긋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아니다.

동굴을 벗어나 이웃을 향하여
베네딕도는 3년동안 동굴에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동굴에 수도자 몇 사람이 나타났다. 그 들의 원장이 죽었기 때문에 베네딕도에게 장상이 되어 달라고 청하러 온 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 러나 그들은 졸랐다. 베네딕도는 서로의 신앙생활양식이 피차에 다르다고 솔찍히 말했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끝까지 간청을 하여 그는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베네딕도는 이렇게 독수 수도자의 생활에서 공주 수도자의 생활로 옮겨갔다. 이것은 그의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은수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지 만 둘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실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혼자 살았고 이웃이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생각하며 베네딕도는 그 정든 동굴을 떠나 수도원으로 옮겨가서 이후 형제적 공동체를 육성하려고 했다. 사명자는 자기 혼자만의 구원의 기쁨에 있을 수는 없다. 마지막 한 영혼까지 구원 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들
베네딕도는 어느 정도 엄격한 성품이었지만 결코 냉혹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언행이 일치하는 철저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에게 수도원 규칙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이 렇게 엄격한 수도생활을 요구하리라고는 예기치 못했다. 그들은 타성에 젖은 느슨한 생활을 원했으나 베네닥 도는 수도자들에게 자신의 주관적 고집을 억제하고 수도자들의 일반적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얼마 안가 서 드디어 심한 긴장과 대립이 빚어졌고 이 긴장은 폭발하여 결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타 협할 인물이 아니었다. 수도자들은 이 베네딕도를 수도원에 끌어들인 것을 몹시 후회하였고, 어떻게 하면 다시 베네딕도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의를 했다. 드디어 수도자들은 폭력을 써서라도 그를 제거하려는 엉 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식탁에 올라오는 포도주 잔에 독을 탔다. 평상시와 같이 식탁에 앉았고 기도를 하자 그 순간 베네딕도의 잔은 산산히 부서졌다. 베네딕도는 즉시 그들의 악마적인 흉계를 파악하였다. 좌석은 경악하여 술렁거렸다. 수도자들은 자기들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았다. 그는 일어나 말했다.

"형제 여러분, 전 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바랍니다. 왜 여러분은 나에게 엉뚱한 짓을 하려 했습니까? 나의 생활습관과 여러분의 생활습관이 결코 함께 어우러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원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초청해 놓고서, 하나님 앞에 헌신했 다는 사람들이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독살하려 합니까?"

베네딕도는 환멸을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동글로 돌아갔다. 이것은 베네딕도의 생애에서 두 번째 맞는 환멸이었다. 첫 번째는 로마에서 학업을 포기하였을 때였다. 흉계가 탄로난 수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도 용서를 청하지 않았다. 베네딕도는 비애에 찬 심정으로 자기 동굴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은둔 기도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이 음흉한 살인음모는 당시의 풍조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도원이 아무리 두꺼운 담 에 둘러 쌓여 있어도 시대풍조는 담을 뚫고 스며 들어왔다.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사람의 생명은 거룩한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이 먼저 사탄의 공격에 맥을 못추었다. 수도생활은 하나의 획기적인 영성운동이다. 그러나 베네딕도의 말대로 많은 수도자들은 "삭발을 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들"이었다. 이 무서운 말은 현재에도 우리의 귀를 때리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 온전한 사명자의 길
그는 동굴에서 다시 기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숨어사는데도 불구하고 베네딕도의 은둔기도생활은 사람 들에게 점점 널리 알려졌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의 은둔생활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자기들도 같은 생활을 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사람들이 그 주변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정주하였다. 베네딕도는 그들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익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해서 비록 아주 작은 규모이기는 했지만 새로운 수도원이 형성되었다. 이 두 번째 수도원은 서서히 성장해 갔으며, 마침내 주변에 열두 개의 작은 수도 원이 생겨났다. 이렇게 수도원의 기틀이 잡히자 그는 드디어 은둔기도생활을 결별하였다. 이제 그는 새로운 수 도원공동체를 지도하는 입장이 되었다. 첫 번째처럼 거칠고 황당한 수도원을 쇄신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습성 화된 마음의 태만은 쇄신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이번에는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수도원을 창설했으니, 이 수도원은 처음부터 그의 힘으로 육성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흔히 예기치 않았던 난관에 부닥치곤 하였다. 그 러나 오히려 그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 차차 소문이 퍼져 그 명망이 높아져 나갔다. 그는 환난 가운데 인내하며 기도하였고, 그 인내는 온전한 사명자로서의 연단이었으며, 그 연단은 오직 그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였다.

성서와 같은 기적들
베네딕도의 삶속에는 많은 기적들이 따른다. 그레고리오는 매우 실천적인 사람이고 기적만을 추종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기적보다는 한 사람의 영혼을 히개시키고 구원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베네딕도의 기적에 대해서 감추려 들지 않는다. 베네딕도 주변의 기적은 그의 경건생활과 영적충만한 생 활의 하나의 표징인 것이다.

샘물
수도원 산 주위에는 물이 없었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먼데서 물을 길어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베네딕도는 그 고생을 보고 산 위에 올라가 기도했다. 그 뒤에 자기가 세 개의 돌을 놓아둔 자리에 가서 물이 나올 때까 지 파라고 했다. 과연 얼마 안파서 샘물이 솟아 나왔다.

호수에 빠진 소년
한 부모가 두 소년을 맡기었다. 그들의 이름은 마오로와 쁠라치도였다. 하루는 쁠라치도가 물을 길으러 호수에 갔다가 빠졌다. 기도하는 중 물에 빠진 환상을 본 베네딕도는 마오로에게 빨리 달려가 플라치도를 구하라고 하였다. 마오로는 달려가 물에 빠진 쁠라치도를 구해내었다. 그런데 호수에 나와보니 마오로는 물에 빠지지도 않고 물위로 달려가 쁠라치도를 구해내었던 것이다. 달려갈때는 몰랐는데 나오고 보니 자신이 빠지지 않고 물 위로 걸어갔다왔던 것이다. 마오로는 놀라서 스승님의 영력이 이러한 기적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나 베네딕 도는 마오로의 순종이 이러한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하였다. 기적을 제자의 순종의 탓으로 돌리는 겸손이 그에 게 있었다.

낫이 떠오름
한 수도자가 일을 하다가 낫을 물 속에 빠뜨렸다. 수도자는 상심이 되었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상심하지 말고 일을 계속할 것을 권면 했다. 그리고 기도하자 물 속에 빠졌던 낫이 다시 수면에 떠올랐다. 이런 기적들은 성 서의 기적들과 비슷한데가 있다. 이러한 일들은 그레고리오의 말대로 영적충만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표징이었다.

하나님의 피조물 까마귀를 돌봄
많은 성인들은 피조물과도 친밀한 유대를 맺었으며, 그들은 짐승들을 한갓 사냥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물로 생각하였다. 베네딕도도 매일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까마귀는 매일 베네딕도에게 날아와 먹이를 받아 먹곤 하였다.

전심으로 기도할 것
베네딕도는 매우 진지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한번은 한 수도자가 하챦은 일에 매달려 골몰하여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네딕도는 마귀가 장난하고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의 들뜬 소행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회초리로 등을 때려주었다. 베네딕도는 때로는 엄격하게 매를 통하여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단번에 해방시켜 주었다.

주위의 시기와 또 다른 새로운 출발
(그림: 왼쪽에 독약을 든 빵을 갔다 주는 사람과 그 독약을 든 빵을 베네딕트의 명령에 따라 입에 물고 갖다 버리는 까마귀. 이후로 까마귀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상징이 되었다)
베네딕도의 소문이 점점 더 퍼지자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그 근처에 있던 다른 성직자인 프로렌시오라는 사람은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 시기는 한도를 넘어 베네딕도를 독살하려는 계획을 실행한 다. 그는 빵에다 독약을 타고 베네딕도에게 갔다준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그가 먹이를 주며 친구가 된 까마귀 에게 마귀의 시험이 있는 이 빵을 멀리 갔다 버리라고 명한다. 이런 일이 빈번하자 베네딕도는 그곳을 떠나기 로 결심하고 의연히 정든 수비아꼬수도원을 떠난다. 떠나는 날 아침에 프로렌시오는 자기 집의 발코니가 무너져 깔려 죽게된다.

몬테까시노
그는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현재의 까지노지역에(나폴리 가기전) 당도한다. 베네딕도 일행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전망이 좋은 자리에 기도원을 세우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오래된 아폴로신전이 있었다. 베네 딕도는 그 이교신정을 부수고 신전을 성당으로 개조하여 새로이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직접 설계를 하고 돌을 나르며 수도원을 지었다. 몬테까시노 수도원을 짖는데 실감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몇몇 사람들이 커다란 돌을 당에서 들어 올리려 했으나 이상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베네딕도에게 말하자 베네딕도는 마귀 의 장난임을 알고 기도를 하자 마귀는 도망가고 바위는 아주 가볍게 들어 올려져 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전을 봉헌하고 이 수도원의 이름을 "몬테까시노"라 이름지었다. 그는 웅대한 규모의 기본설계를 했고,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튼튼한 토대를 쌓았다. 그는 집을 견고하게 지으면서 몇번이고 검토해 나갔다. 그는 실제 위대한 건축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몰락하는 시대의 걸출한 영적 건축자였다.

서양정신사의 한 상징
몬테까시노는 서양정신사의 한 상징이었다. 베네딕도는 기도와 노동과 찬미, 그리고 침묵을 강조했다. 고대에 있어서 노동은 노예나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베네딕도에 와서 비로서 노동을 중시하는 사상을 펴게된다. "기 도하고 일하라" 이것이 수도원의 모토였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하여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 찬미는 무엇보다 도 중요하였다. 베네딕도 수도원의 가장 깊은 존재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 찬미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권력도 명예도 사라지지만 하나님 찬미는 영원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베네딕도는 몰락하는 고대로마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기도와 노동과 찬미를 힘차게 실천하였다. 베네딕도는 시절에는 아직 성가의 원조인 그레 고리오성가는 없었다. 아마 베네딕도의 하나님 찬미의 음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레고리오 성가가 발전했을 것이 다. 베네딕도의 하나님 찬미에는 감사기도와 간구의 기도가 다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사람을 그 아집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찬양하는 자는 자기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개 된다. 이후 이 몬테까지 노 수도원으로부터 전 유럽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복음이 세상으로 널리 확산되어 간다.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
어떤 모습으로 죽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다. 베네딕도는 마지막 죽는 순간에까 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이 죽는 것을 미미 알았다. 그는 운명하기 전 사람들에게 자신을 부축해 일으켜 줄 것을 부탁한다.

"소망중에 바라보던 참다운 본향, 그 본향에서 우리 주님이 나를 영접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누워서 갈 수 있는가? 일어나서 경건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접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547년 3월 21일, 그는 이렇게 일어나 마지막으로 혼심의 힘으로 손을 하늘로 쳐들고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베네딕도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살다 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파괴와 재건
그러나 안따깝게도 수도원의 원래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베네딕도가 죽고 삼십년 후인 581년 이 수도원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8세기에 가서야 다시 재건되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제2차세계대전에 폭격을 맞았다, 그리 고 그 후에 다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찾아가기

찾아가는 길:
1. 승용차 : 
1) 로마순환도로 G.R.A. 14번 Exit, 이후 A24(아퀼라 L'Aquila 가는 고속도로)
2) 고속도로 약10분?, Vicovaro-Mandela로 나가, 이후 Subiaco, (23 Km) 표지따라 감.
3) 수비아코 이후에 Jenne 따라 가다, 약 1.500 mt 이후 Foresteria 나옴.
4) 이후 계속 산으로 오르면, Sacra Speco 동굴기도원
대중교통:   
1) 로마 지하철B선 "Ponte Mammolo" 역에서 Subiaco행 시외버스 뿔만, 1시간에 1대 정도.

문의

1. Monastero Santa Scolastica  00028 Subiaco (Roma); Tel.0774.82421, Cel.:3334077850
  monastero@benedettini-subiaco.org
2. Foresteria - Ospitalità Tel. 0774.85569, Cel.: 3486537743, foresteria@benedettini-subiaco.org
3. Biblioteca Tel. 0774.85424,
4. Erboristeria Tel. 0774.8242398 - 3334077850
5. Monastero San Benedetto 00028 Subiaco (Roma), Tel. 0774.85039 - 3383252282
  sacrospeco@tiscali.it

방문시간

방문시간: 9.30-12.15, 15.30-18.15
문의 및 그룹예약; Tel. 0774/8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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