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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마의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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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2-01-14 16:42 조회 17,612 댓글 0
 

로마연합교회 / 이탈리아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주효숙 옮김|까치|396면|1만8000원

"그녀를 돌려세워 봐! 엉덩이를 보여줘!"
"비싸지 않아요. 거저 주는 거요. 요즘 이런 누비아 출신은 드물어요."
"이마의 끈을 치워봐. 자, 내 말이 맞지, f(도망·fugam의 머리글자) 낙인이 찍혔어! 내가 뭐라고 했어, 도망노예라고!"

2000년 전 고대 로마의 노예 시장은 이런 식이었다. 목재 단상 위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들어온 '신상품'의 목에는 상표까지 걸렸다. '누비아, 아주 힘셈, 조금 먹음, 다루기 쉬움' '학자, 그리스어 됨, 동양의 중요 가문에서 일했음, 철학을 가르치고 연회에서 시 낭독하는 데 이상적임' '다키아 군주의 딸, 처녀, 집안일과 침대 덥히는 데 최고'….

대부분 전쟁 포로들이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의 평화) 중에도 어느 곳에선가는 늘 전쟁이 벌어졌고, 진군하는 병사들 뒤에는 노예 상인들이 따랐다.
로마 가정에는 보통 5~12명의 노예가 있었다. 일부 귀족은 로마 시내에 500명, 외곽 농장에 2000~3000명을 거느리기도 했다. 이들의 근육이야말로 로마 제국의 힘줄이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로마법은 주인이 이들을 죽이든 살리든 관여하지 않았다. 노예용 특수 목걸이엔 "도망치지 못하게 나를 붙잡아주세요. 나는 지금 도망 중이에요"라고 씌어 있었다.
아직도 로마에 대해 할 이야기가 남았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멈출 수가 없다. 저자는 로마의 절정기인 기원후 115년 트라야누스 황제 집권기의 어느 날로 이끈다. 그리고 도시의 24시간을 그린다. 마치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3D 화면으로 보는 듯하다.
제공콜로세움의 실황 중계는 손에 잡힐 듯 박진감 넘친다. 당시 검투사와 맹수들은 특수 승강기로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악단의 연주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자 100마리가 동시 입장하는 장관에 객석은 열광했다. 그 광기 속에 수십만이 죽어나갔다. 공연이 계속된 4세기 반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좁은 지면에서 최다 사망자를 낸 장소였다. 검투사의 피는 간질병 치료약 혹은 강장제로 처방됐다. 경기장은 무료입장이었지만 뼈로 만든 출입증에는 좌석 번호와 출입문 구역까지 적혀 있었다.
3000명을 수용하는 공중목욕탕의 정경은 어떤가. 로마인들은 아침엔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오후에 목욕으로 심신을 풀었다. 냉·온·열탕을 오가며 때도 밀고, 운동도 하고, 사업도 논했다.
공중화장실 풍경도 별나다. 칸막이가 없다. 다들 몇 푼을 내고 입장하면 긴 대리석 벤치에 뚫린 구멍 위로 좌정한다. 요즘 지하철 안 같다. 볼일을 보는 동안 서로 잡담을 나눈다. 공중화장실은 포룸이나 공중목욕탕만큼이나 멋진 사교장소였다.
공동주택 인술라는 로마 계급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보통 6층 높이에 다락방을 더한 건물. 요즘 주상복합 아파트 비슷하다. 하지만 층별 이용자는 지금과 반대였다. 위층에 가난한 사람이, 아래층에 부자나 유력자가 살았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높을수록 힘이 들기 때문이었다. 안전도 이유다. 당시엔 건물이 높을수록 부실하고 붕괴 위험이 컸다. 화로와 등불을 쓰다 보니 화재도 빈번했는데 저층에선 피하기 쉬웠지만 고층에 살면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꼭대기 다락방, 펜트하우스는 극빈자 차지였다. 이들은 계단 오르내리기가 귀찮아 요강을 그냥 밖으로 비우기 일쑤였다. 황제는 소변·배설물 투기 금지법을 제정했다.

저자는 묻는다. 로마 같은 선진 문명이 어떻게 비인간적인 노예제를 허용했을까. 답은 생산 체제에 있다. 아무리 고상한 문명을 자랑해본들 로마 역시 산업화 이전 사회였다. 노예가 이기(利器)를 대신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사회 투쟁의 결과라고 믿거나 생각하는 일상생활의 많은 측면은 사실 이용 가능한 에너지원의 부산물이다. 여성 해방을 포함해서 말이다." 인권 운동이나 이념 투쟁이 진보와 해방의 원천인 듯하지만, 기술혁신의 공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chosun.com 북스 신간소개 2012.1.14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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